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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 43장

쥑쥑유자 2024. 3. 1. 22:55

당홍원은 새벽같이 일어나 식량을 챙기고 있었다.
무덤에 들어가면 출입을 막는 진법이 여럿 있을텐데, 몇시진은 소요될 것 같았다.
끼니를 거르는건 절대 안 된다. 사람은 먹어야 한다. 당홍원의 지론이었다.

"이 정도면 됐고, 슬슬 둘을 부를까."

경쾌한 걸음으로 방으로 올라갔다. 그 무렵 남궁명은 당홍원의 방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벌써 일어났네?"
"아, 역시 방에 없었구나. 인기척이 없어서 걱정했어."
"먹을 것 좀 미리 챙겼지. 근데 혼자 무슨 일이야?"
"몸 상태가 어떤지 봐줬으면 해서. 괜찮을까?"

당홍원은 대답 대신 흥얼거리며 방 문을 열고 손짓했다. 남궁명은 함께 들어오고 당홍원의 요구에 따라 정자세로 앉았다.
당홍원은 그의 손목을 짚고 눈을 감았다. 천천히 내공의 흐름을 느꼈다.

"화가 좀 쌓였나보네. 내기의 흐름이 흐트러졌어. 당가 단환이라도 하나 먹어."
"아니, 괜찮아. 금방 가라앉힐게."
"고집 부리기는."

당홍원은 약함에 손을 대자마자 남궁명의 거절을 들었다. 손목에서 손을 떼고, 남궁명의 등을 팍! 팍!! 소리가 나도록 몇번 두드렸다. 남궁명은 당황하며 쿨럭거리다 어라? 하고 얼빠진 소리를 냈다.

"몸이 가볍네?"
"물건 때려서 고치는거랑 비슷한거야."

꽤나 적절하지만 동시에 기분이 묘해지게 만드는 비유였다. 어쨌든 지금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기에 아무말 없이 넘어갔다.

"어지간히도 싫나봐."
"뭐가?"
"연씨 말이야. 형이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지금까지 없었잖아? 어릴때도 꼭 그런건 안 드러내더니."

남궁명은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당홍원의 시선이 지긋이 따라붙자 입을 열었다.

"나한테만 위협 되거나 귀찮으면 모를까, 그 피해가 너한테까지 끼치는게 싫어."
"정말 귀찮은 일을 사서 하는 성격이네."

남궁명은 어깨를 움찔했다. 그러나 당홍원이 유유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다정함이 좋아서 따라다닌거니까. 한결 같은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데?"
"… 기뻐."
"그렇지? 그럼 이제 가자~ 식량은 내가 미리 챙겼어."

그의 발빠른 행동에 의해 나머지 두 사람은 끌려가듯 목적지를 향해갔다.
복작거리는 장소엔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섬서 근처에 있는 정파들, 이름을 날리는 사파인들이나 마교인원들까지 모여 있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어느쪽도 우호적이지 못하니 당연한 일이다.
당홍원은 그 사이에서 정파쪽을 둘러봤다. 화산파 제자들이 종남파의 제자들과 옥신각신 하고 있었고, 그 옆에 녹빛 포를 입고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과 대화하고 있었다.
당홍원은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일행인 남궁명과 연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가까워질수록 익숙한 얼굴이 더 선명해졌다. 동그란 만두가 하나 올라가 있는 듯한 어두운 갈색 머리카락, 피곤함이 묻어나는 검은 눈동자, 뺨에 자리한 흉터와 손에 독이 스며든걸 감추려는 검은 장갑까지.

"역시 형이었네. 이따 말 걸어볼까?"
"글쎄, 일단 돌아가는 상황 파악이 먼저일 것 같아."
"어디 알아서 정보 나불대줄 사람 없나~"

당홍원은 과장스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탓에 몇몇 사람의 시선을 끌어버렸는데 그 중엔 당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대화하던 상대방에게 뭐라 말하더니 당홍원에게 다가왔다.

"홍원이니?"
"응, 오랜만이네."
"하긴 이렇게 생긴 사람은 너뿐이겠지."
"욕이야?"
"당가에서도 제일가는 미인에게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뭐가 되겠니."

그는 당영의 첫째 자식, 당가의 차기 가주이자 현재 소가주 직을 맡고있는 당천이었다. 당홍원은 아는 사람 대부분과 친근해 그도 편하게 말했으나 곧 단정히 자세를 정돈하고 뒤의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당가의 당천이라 하옵니다. 수상하신 두 분이나 제 아우의 동행이시니 감시만 하겠습니다."

수상할만도 했다. 남궁명은 밖에선 항상 멱리를 쓰고다녔고, 마교와 동행했다는 꼬리표를 만들고 싶지 않던 당홍원이 연의 머리에도 멱리를 얹혀놨다. 멀쩡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다니는건 당홍원 뿐이었다.
당홍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검은 옷 입은건 마교인, 무당에서 만나서 임시동행 중이야.]
[너… 그런 위험한 짓을 하는거야?]
[전대 맹주님이 부탁했단 말이야. 형은 그런거 거부할 수 있어?]

전음으로 들려온 물음에 당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홍원은 빙긋 웃었다.

[그럼 저쪽은 됐고, 옆에 있는 사람은 남궁명 형. 형이 아는 그 사람 맞아.]

당천은 먼지쌓인 탁한 기억들을 헤집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곧장 기억이 나지 않는지 잠시 얼굴을 구기다가 천천히 입을 벌리더니 남궁명의 양 어깨를 잡았다.

"진짜? 너야?"
[응.]

얼마나 놀란건지 순간 육성으로 물었다. 전음을 듣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당천은 헛기침을 했다.

[오랜만이네. 네가 살아있을 줄은 몰랐어.]
[숨어다녔거든. 근데 홍원이가 한눈에 알아보더라. 그때부터 같이 다녔고.]
[매정하네. 홍원이가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아주 하루종일 눈물을 쏟으면서…]
[그만, 그런건 말하지 마.]

아침엔 남궁명이 당홍원의 눈을 피했던가.
지금은 당홍원이 남궁명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